자코메티의 예술세계ㅣ초현실주의l 걷는남자l도시광장l사무엘베케트l라깡l사르트르l실존l절대의 탐구l피에르 마티스ㅣ디에고l장주네l아네트l사물성l목잘린 여인l로뎅l로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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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On Nov 27, 2023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사랑입니다. 오늘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예술세계와 실존주의, 사물성 즉 실재를 추구하는 철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코메티는 길쭉하고 앙상한 팔다리와 근육과 살점마저 도려낸 가냘픈 몸통,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진 인물상으로 유명합니다. 우리는 그의 조각에 나타난 인물들은 보고 있노라면 당혹감과 난감함에 휩싸이며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게 만듭니다. 아마도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조각상들과는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코메티의 시각적인 세계는 대상을 눈으로 직접 보고 그리는 전통적 회화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고향인 스위스 스탐파에서 인상주의에 속하는 화가인 자신의 아버지 Giovanni Giacometti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가 한때 초현실주의에 매달렸지만 그가 추구해왔던 사물의 실재를 그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즉 초현실주의는 실재성reel이나 사물성physicality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1924년부터 1935년, 이 기간은 그가 추구하던 실재탐구를 위한 일시적인 외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1935년에 초현실주의를 떠나기로 공식적으로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반복적인 관찰과 스케치에 뿌리를 둔 신체묘사에 대한 애착은 나중에 그의 생애 후반에 자코메티 미학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자코메티는 고대인류가 숭고와 미를 재현하기 위해 인간의 몸짓을 과장하고, 살과 근육을 아낌없이 덧붙이고, 육체를 터질 듯이 부풀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코메티는 이러한 선구자들의 가장된 무지feigning ignorance에 의존하는 방식을 거부했습니다. 그에게 조각한다는 것은 공간으로부터 쓸모없는 비계를 떼어내는 것이고,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사물의 외부를 비틀어 짜내듯이 압축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코메티는 조각상이 거의 먼지가 될 때까지 덜어냈는데, 그는 인물상이 아무리 핍진한형태, 심지어는 그로테스크한 형태가 되더라도 인물에 생명력과 긴장감을 불어넣고자 하는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장 주네는 자코메티를 인간에게 거짓외양을 벗겨낸 후 남는 것을 찾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과감하게 삭제할 줄 아는 작가로 평가했습니다. 그의 절친인 장폴 사르트르는 바로 이러한 작업을 절대의 탐구 The search for the Absolute라고 말합니다. 사르트르는 자코메티가 어떤 인물을 조각할 때 자신의 공간적 직관을 통해 대상을 보고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는 절대적 거리를 찾을 수 있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하는 증언은 사르트르의 이러한 평가는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라깡도 이 문제를 눈과 응시의 분열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코메티가 어떤 인물을 그리거나 조각할 때 자신의 공간적 직관을 통해 대상을 보고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는 절대적 거리를 찾을 수 있다고 평가한 것을 라깡식으로 돌려말하면 자코메티는 어떤 대상을 볼 때 우리가 문화체계 즉 언어체계에 예속되어 훈육받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언어체계 바깥으로 나가서 그의 오류투성이의 신체적 기관인 눈과 제3의 응시를 일치시키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보이는 대로 본다고 해서 자신의 주관적이고 고유한 정동을 삭제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류가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굴복하고 수용해 온 대타자의 권력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보이는대로본다”는 의미가 대상을 그대로 복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즉 우리 눈으로 보는 대상이미지는 가상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걸러내어 우리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핵심, 실재를 본다라는 의미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자코메티에 관한 비평에서 자코메티가 추구한 것이 주관과 객관, 사물성과 사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존재와 무의 사이를 서성이는 작업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자코메티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물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모델들에게 고정된 거리에서 상당히 긴 시간을 의자에 앉아있을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는 모델의 내면으로부터 살아 움직이는 꿈틀대는 바로 그 존재, 혹은 대상 a, 우리의 사유영역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공백을 발굴해 낼 때까지 시간과 공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자코메티는 특히 인간신체중에서 얼굴과 눈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얼굴을 수직선과 수평선의 조합으로 밀도높은 붓질로 반복적으로 칠해서 아프리카 가면처럼 거의검게 됩니다. 데생의 경우 마치 실타래가 얽기설기 엉킨 것 같이 그립니다. 마치 혼돈속에 빠진 영혼, 분열된 주체, 어느날 깨어보니 세상에 내던져진 현존재를 표현하려는 것 같습니다. 사르트르는 얼굴을 “눈에 보이는 초월성”으로 간주했는데요 자코메티 역시 신체의 여러부분중에서 유독 얼굴을 오브제를 넘어선 초월적 존재로 취급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굴주위에 오크빛 후광을 그려넣어 흰 배경에 연한 붓질로 칠한 몸체와 강한 콘트라스트를 이루는게 특징입니다.
자코메티가 1945년이후에 만든 그의 입상들을 보면 여성은 언제나 부동자세로 정면을 바라보며 정립자세를 취하고 있고 남성인물들은 항상 어디론가 가려는지 발을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성은 성충동의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이집트의 여신처럼 좀처럼 접근할 수 없는 사후를 관장하는 태양신 Ra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정면을 응시하는 부동자세는 흔히 신적인 정면성이라고 불립니다.
물론 자코메티는 장주네에게 여성을 정립자세로 만든이유를 물어보았을 때 그 이유를 여성에 대한 성적 무관심때문이라고 고백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관람자로서는 남성인물이 무죄의 고백을 위해 태양신의 대리자 오시리스 여신앞으로 나아가는자 혹은 본래적 실존을 위해 한걸음을 내딛는 죽을 자 앞에 무심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오시리스 여신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자코메티와 사무엘 베케트는 1945년부터 60년 사이에 서로의 예술스타일을 공유했는데요. 둘이 만나면 베케트는 말이 별로 없었고 주로 자코메티가 먼저 말을 꺼내는 분위기였답니다. 1966년 1월에 자코메티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죽었을 때 베케트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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