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HD역사스페셜 – 미스터리 추적! 신라탑에 백제금강경이 봉안된 까닭은? / KBS 20050923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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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On Premiered Jan 19, 2022

- ‘왕궁리5층석탑’과 그 안에서 출토된 ‘금제금강경’
1965년 전북 익산의 왕궁리5층석탑, 기울어져 가던 탑신을 복원하기 위해 해체와 수리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청동여래입상과 녹색 사리병 등 국보급 유물 10여점, 그 중에서도 순금으로 제작된 ‘금제금강경’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작품이었다. 어마어마한 유물은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발굴보고서조차 나오지 못한 채 베일에 쌓여있다.
과연 누가, 무슨 염원을 담아 이렇게 진귀한 작품을 만든 것인가?

- 탑과 사리유물의 제작연대가 다른 까닭은?
금강경이 출토된 왕궁리5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이다. 따라서 금강경 역시 당연히 같은 시기의 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 금제금강경의 제작시기에 대한 새로운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금강경과 함께 출토된 사리함의 문양이 백제의 사비시대에 나온 문양과 같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어 금강경의 글씨체는 중국의 육조 사경체와 같아 7세기를 넘지 않았다.
즉, 금강경과 그것을 보호하던 사리함은 ‘백제’ 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같이 출토된 청동여래입상과 석탑은 통일신라 작품이다. 왜 금강경만이 백제 시기 작품이며, 통일신라 탑에 봉안되었던 것일까?

- 미스터리를 풀 결정적 단서, 왕궁리 목탑지와 일본의 고문서!
1965년 왕궁리석탑 해체 당시 석탑에선 볼 수 없었던 ‘백제목탑’ 구조가 기단부에서 발견, 발굴팀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묻혀져 왔는데...
1990년대 중반, 실제로 현재 석탑의 기단부에 훨씬 큰 규모의 목탑지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즉 금강경은 현재 석탑 이전에 세워진 목탑 내에 안치 되었으며, 석탑이 지어진 후 금강경이 옮겨진 것이다.
이와 관련한 단서가 일본의 고문서 ‘관세음응험기’에서 발견됐다. 문헌에는 백제 무왕의 왕궁리 천도와 왕궁리 일대 사찰 조성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었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관세음응험기’ 기록과 왕궁리 유물과의 관계를 검증해 봤다.

- 왕궁(王宮)리, 최초로 확인된 백제 왕궁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왕궁리, 바로 이곳은 백제 무왕이 천도를 한 곳이었다.
여기에 백제 궁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1990년대 이후 발굴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왕궁리 유적의 성격을 드러내는 유물은 ‘수부’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 우두머리가 거주하는 곳이라는 뜻의 백제기와이다. 지금까지의 발굴결과를 토대로 백제 왕궁을 그래픽으로 복원했다. 기와로 장식한 화려한 담장, 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정원의 모습과 공방시설, 화장실에 이르는 왕궁 부속건물들까지 매우 구체적이다. 그동안 백제 왕궁은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었기에 익산 왕궁성의 가치는 더욱 크다.

HD역사스페셜 20회 – 미스터리 추적! 신라탑에 백제금강경이 봉안된 까닭은?
(2005.9.23.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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