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장자크 루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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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On Dec 13, 2023

톨스토이가 예수 다음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았던 루소가 말년에 쓴 산문입니다. 프랑스혁명의 발발과 사회주의의 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도 루소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인물이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온 세상으로부터 ‘왕따’ 당하고 얼마나 고통스런 만년을 보냈는지, 우리는 이 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산책
“나는 끊임없이 배우면서 늙어간다.” 솔론(기원전 640~558. 아테네의 정치인으로 그리스 일곱 현인 중 한 사람.)은 늙어서 자주 이 말을 되뇌곤 했다. 나 또한 늙었기에 이 말에 대해 어떤 할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년 전(1757년 12월, 데피네 부인과 결별하면서 그녀가 마련해준 레르미타쥬를 떠나던 때를 가리킴)부터 경험을 통해 내가 습득했던 앎은 정말 우울한 것이었다. 그러니 무지가 오히려 더 바람직하리라.
역경은 물론 훌륭한 스승이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교훈들은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역경을 통해 얻은 이득은 곧잘 그것을 얻기 위해 지불한 대가보다 크지 않다. 게다가 뒤늦게 터득되는 교훈들을 통한 앎은 미처 습득하기도 전에 그것을 유익하게 이용할 시기가 지나가 버린다.
청춘기는 예지를 배우는 시기다. 노년기는 그 예지를 실행에 옮기는 시기다. 경험은 언제나 교훈을 준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각자 자신 앞에 남은 생의 기간에 대해서만 유익할 뿐이다. 죽어야 할 그때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때는 아니지 않은가?
글쎄 내 운명에서나 또는 내 운명을 농락한 타인들의 강한 집착들에서 아주 더디고 힘들게 얻은 앎이 내게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나는 타인들이 내게 겪게 하는 불행을 더 잘 간파하기 위해 그들을 더 잘 아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그 앎은 내게 그들이 파놓은 함정을 파헤쳐 보여주었으나 그 함정을 피할 수 있게 해주지는 못했다.
철저히 그들의 계략에 빠져 살았으면서도 이렇게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스스로를 그들의 희생물이자 장난감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을 뿐인 그 어리석고 다정한 신뢰를 그들에게 변함없이 보냈을까! 나는 정말 그들에게 꼬박 속아 살았으며 그들의 희생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에게서 사랑 받고 있다고 믿었기에, 내 마음은 나 자신에게 만큼 그들에게 신뢰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내게 불러일으켰던 우정에 즐거워했다.
그 달콤한 환상은 깨져버렸다. 시간과 오성이 내 불행을 의식케 함으로써 드러내 보여주었던 그 우울한 사실은, 그 불행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며 이제 체념하는 길밖에 없음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내 나이에 겪은 이 모든 경험은 지금 내게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투쟁에 말려들어 죽을 때에나 거기에서 벗어난다. 경주가 다 끝나가는 판인데 이제야 마차를 더 잘 끄는 법을 배운들 무슨 소용이람. 그때는 오직 어떻게 그 경주장에서 잘 빠져 나올지 고심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 늙은이의 공부는 - 그에게 공부할 것이 남아있다면 - 오직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그럼에도 내 나이의 사람들이 가장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그것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한다. 늙은이들은 한결같이 젊은이들보다 더 삶에 집착하며 젊은이들보다 더 마지못해 이세상을 떠난다. 왜냐하면 삶을 위해 모든 노고를 바쳤거늘, 삶의 종착점에 선 지금 그 노고의 결과가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든 걱정거리와 재산, 밤잠을 설치며 이룩한 결실들은 그들은 떠날 때 가져갈 수 없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에 가진 것 중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지 않는다.
나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비록 내가 내 성찰의 결실을 더 잘 이용할 줄은 몰랐을지라도 시기 적절하게 성찰함으로써 그것들을 잘 받아들이고 납득했다. 어린시절 이미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진 나는 경험을 통해 내가 이곳에 살도록 운명지어지지 않았으며, 이곳에서는 내 마음이 갈망하는 경지에 결코 이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인간들 사이에서 얻지 못하리라 여겼던 그 행복에 대한 추구를 중단하면서 내 강렬한 상상력은 시동이 걸리자마자 평온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나듯 내가 사는 공간 밖으로 훌쩍 날아오르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갖게 되었으며, 평생 동안 내 삶을 가득 채웠던 끊임없는 불행한 사건들과 불운에 의해 더 확고해진 바로 그 생각 덕분에 나는 늘 누구보다도 더 큰 관심과 흥미와 정성을 가지고 자연과 나라는 존재의 운명을 이해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나보다 더 현학적으로 철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철학은 그들 자신에게 마저 생소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박식해지고 싶은 그들은 - 순전히 호기심에서 어떤 기계장치를 연구하는 것처럼 - 그것이 어떻게 운행되는지 알기 위해 우주를 연구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식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연구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내면을 깨우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했다.
그들 중 몇몇은 인기만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책이든 쓰고자 했다. 출간된 책의 내용은 그들에게 관심 밖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책이 인정받도록 하는 일과, 공격받을 경우 방어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들의 책이 지녀야 할 고유한 유용성에 대해서도 마음쓰지 않았으며 반박만 받지 않으면 그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조차 신경쓰지 않았다.

나로 말하면 배우고 싶었던 것은 나 자신을 알기 위함이었지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타인을 가르치기 전에 스스로를 충분히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일을 사람들 속에 어울려 살면서 하려고 했기에 내 모든 연구들은 결코 한 황량한 섬 (하지만 나는 이곳에 칩거하여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에서 외롭게 이루어진 적이 없다.
사람들의 행동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좌우되게 마련이다. 인간 본성의 일차적인 욕망들과 관계되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의 견해는 곧 우리의 행동규칙인 셈이다. 그러한 변함없는 원칙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 자주 오래도록 참된 죽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곧 이 세상에서 그러한 죽음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교활하게 행동하는 내 보잘것없는 천품(天稟)에 위안을 주곤 했다.

혈통과 경건함이 지배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지혜와 신앙심으로 가득 찬 성직자 집안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들은 편견이라 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던 몇 가지 원칙과 금언을 명심하고 생활했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었으며, 허영에 빠지기도 하고 겉치레 말에 기분좋아하기도 하면서 나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나는 구교도로 개종했지만 기독교도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곧 익숙해진 나는 진정으로 내 새로운 종교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바랑스 부인(루소가 16세 때 만난 여인으로 그에게 “영원한 여인” 이 되었다)의 가르침과 모범이 되는 신앙은 나의 애착을 견고히 해주었다. 그녀 곁에서 보낸 꽃다운 내 청춘기의 전원생활의 고독과 흠뻑 빠져들었던 양서 읽기는 다감한 감정을 지니고 태어난 내 성품을 더 북돋워주었으며, 나를 거의 성직자 식의 독신자로 만들었다.
은둔생활 속에서의 명상과 자연에 대한 탐구, 우주에 대한 관조는 끊임없이 한 은자에게 사물의 창조자를 앙모하지 않을 수 없게 하며, 온유한 염려속에서 그가 바라보는 모든 존재의 종말과 그가 숨쉬고 있는 삼라만상의 원인을 규명하도록 강요한다. 운명이 나를 세상의 급류속으로 내팽개쳤을 때 나는 잠시나마 내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것을 전혀 찾지 못했다. 그보다는 평온한 여가에 대한 아쉬움이 나를 떠나지 않았으며, 재산과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있었던 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과 불쾌감만 갖게 만들었다.

내 불안한 욕망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나는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얻는 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내게 성공의 서광이 비칠 때조차 내가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획득할지라도 내 마음이 열망했던 그 행복은 결코 얻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렇듯 나를 완전히 이 세상으로부터 낯설게 만들었던 불행들 이전에 이미 모든 것은 나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에서 초연히 벗어나게 해주었다. 나는 악한 기질은 없었지만 마음 속을 관습적인 악습으로 가득 채운 채 어떤 원칙도 없이 그야말로 내 오성에 의해 되는 대로 살았으며,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내 의무들을 소홀히 하며 곤궁과 유복함, 지혜와 미망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마흔 살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나이 마흔을 성공을 위한 내 노력의 종착지이자 야망의 종점으로 삼아왔다. 그 나이가 되면 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지 아니 할 것이며, 내 여생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맹세했었다.
그 때가 오자 나는 수월히 그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경제적으로 좀더 안정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나는 미련없이 정말 기쁜 마음으로 체념했다. 모든 환상과 헛된 소망을 떨쳐버린 나는 온전히 돈단무심과 언제나 나의 가장 주요한 취향이자 지속적인 성향이었던 정신의 휴식에 탐닉했다.
나는 속세와 그 속세의 허영들과 결별했으며, 모든 액세서리들을 포기했다. 더 이상 검도 손목시계도 흰색 스타킹도 금박도 모자도 필요치 않았다. 간단한 가발 하나와 헐렁한 옷 한 벌이면 충분했다. 그 모든 행동이상으로 나는 내 마음에서 탐욕과 포기했던 것들에 또 다시 눈독들일 수 있는 여지를 사그리 없애버렸다. 나는 내게 전혀 적합치 않은 직업 (당시 루소는 뒤팽의 비서이자 회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을 포기했다. 그런 다음 항상 확고한 취미로 가지고 있던 일, 즉 악보 베끼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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