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유치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7분만에 읽기 - 니체의 영원회귀, 플라톤의 이데아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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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On Jan 12, 2020

체코슬로바키아 브륀 태생의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혼란만 느끼고 책장을 덮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요. 철학과 사랑, 정치 등 시대와 삶을 좌지우지하는 내용이 가득한 책이 바로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에 담긴 철학적 개념들은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책의 처음을 장식하는 이 문장은 19세기 철학자 니체의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원회귀란 말 그대로 세상 모든 것이 영원히 회귀한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자연의 모든 과정을 결정하는 유한한 수의 요인들이 존재하므로, 그 수의 가능한 조합들이 존재한다면, 이 수가 다 찬 뒤에는 이전의 조합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니체는 이처럼 영원히 창조되며 영원히 파괴되는 세계를 ‘디오니소스적 세계’라고 이야기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초인)의 태도를 니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와 관련해 소설 속 인물들은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이라고 말하는데요.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가 소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두 번째 철학 개념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입니다. 우선 문장을 살펴보도록 하죠.

“그는 플라톤의 '향연'의 유명한 신화를 떠올렸다. 옛날에 인간은 야성을 동시에 지녔고, 신이 이를 반쪽으로 분리해서 그때부터 서로 반쪽을 찾으려고 헤맸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욕망이다. (중략) 그런데 훗날 그에게 숙명적인 여자, 자신의 또 다른 반쪽을 진짜 만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누구에게 호감을 주어야 할 것인가? 바구니 속에서 발견한 여자인가? 아니면 플라톤 신화의 여자인가? 그는 꿈속 여자와 함께 이데아 세계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란 사물과 사고들이 지닌 완전불변한 본질을 말합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세상 만물엔 각각의 이데아가 존재하는데요.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은 이데아를 베낀 일종의 복사물에 불과하며, 우리가 각각의 사물 혹은 개념에 대해 ‘그것’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미 이데아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플라톤은 말하죠.
그런데 이 ‘이데아’는 현실이 아닌 하나의 이상세계에 해당합니다. 소설 속 인물이 ‘꿈속 여자와 함께 이데아 세계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는 것은 그가 이루고 싶지만 이룰 수 없는 세계 혹은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말하죠.

그럼 본격적으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책은 총 7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토마시의 삶을 보여주는 1부와 5부, 그의 연인 테레자의 삶을 보여주는 2부와 4부, 두 사람의 마지막을 그리는 7부가 한 축을 이루고, 또 다른 연인 사비나와 프란츠의 삶을 그리는 3부와 6부가 다른 축을 이루죠.

책은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가벼운 사랑’을 추구하는 토마시와 운명론에 기댄 ‘무거운 사랑’의 테레자이죠. 두 사람은 토마시가 우연히 간 보헤미아 술집에서 만나게 됩니다. 토마시는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고, 곧 프라하로 찾아온 그녀와 함께 합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지닌 사랑의 태도가 극명히 다르다는 점에 있습니다. 의사인 토마시는 여자와 섹스는 하지만 결코 잠을 자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있어 여자들과의 섹스는 축구경기 관람처럼 포기할 수 없는 일이며, 그저 에로틱한 애정에 불과하죠.
반면 테레자는 세상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매사를 비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서로 비슷비슷한 육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갇혀 있는 뻔뻔스러운 세계’를 살아가던 중, 토마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토마시를 통해 아무 만족도 주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토마시의 가벼운 사랑, 즉 바람기로 인해 질투심에 사로잡혀 살게 되죠.
사랑에 대한 태도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의 삶이 늘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권태를 느끼기도 했으며,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편과 ‘잘 나가던’ 직장을 아내로 하여금 떠나야 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원망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떠나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맞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은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 한 것이죠.

두 번째 주인공은 ‘가벼운 사랑’을 추구하는 사비나와 ‘무겁고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프란츠입니다. 토마시의 옛 애인인 사비나는 스위스 제네바로 망명해 아내가 있는 남자인 프란츠를 만납니다. 두 사람의 삶 역시 토마시와 테레자의 관계처럼 상반됩니다. 공산주의 세계에서 이념을 강요받으며 자란 사비나는 억압된 세계에게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며, 아버지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프란츠는 관계를 지키고자 노력하죠.
토마시와 테레자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프란츠에게 ‘음악’이 해방이라면, 사비나에게는 야만적인 소음일 뿐입니다. ‘행렬’은 프란츠에게 답답한 삶을 벗어나는 일탈이지만, 이를 강요받았던 사비나에게는 혐오의 대상일 뿐이죠. 결국 사비나는 프란츠를 떠나고 맙니다.

이후 사비나는 토마시의 아들을 통해 토마시와 테레자가 오래도록 함께였으며 함께 죽음을 맞이했음을 알게 됩니다. 토마시와, 프란츠와 함께 더 오래 있었다면 그녀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그녀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책장을 덮은 뒤, 우리는 다시금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무거움과 가벼움 중 어느 것도 고를 수 없고, 허무와 권태 또한 피할 수 없기 때문이죠. 권태가 두려운 사람은 새로운 일을 저지를 것이고, 허무가 두려운 사람은 모범적이되 조금은 권태롭게 살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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