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터러시] 2부. 영화 ‘명량’과 ‘한산’을 두 배 더 감동적으로 보는 방법_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김경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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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On Aug 29, 2022

영화 ‘한산’과 ‘명량’을 두 배 더 감동적으로 보는 방법

영화 ‘한산’과 ‘명량’을 깊이 있게 만나기 위해서는 ‘난중일기’ 읽기를 추천합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47세인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까지 7년 간 쓴 일기로 국보 제76호이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시중에 다양한 책들이 나와있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는 2,595일 치의 분량이지만, 인류 역사에 남긴 유산의 무게는 천금보다 무거울 것입니다.

난중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인간 이순신’의 고난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명량해전이 있던 1597년 정유년이 가장 힘든 해였습니다. 사천해전의 총상과 고질적인 급성위장염 때문에 육체적 고통이 심했습니다. 난중일기에는 ‘식은땀으로 옷을 적셨다.’ ‘구토를 수차례 했다’, ‘몸이 불편하여 잠을 이룰 수 없다’ ‘몸이 불편하다’라는 글이 90여 차례 이상 나옵니다.
이순신의 본격적인 고난은 1597년 2월 26일, 전라좌수사의 파직과 한양 압송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투옥되어 온갖 모함과 한 차례의 고신을 당하고 36일만인 4월 1일에 출소되어 다시 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주일 후인 4월 13일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부고의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울부짖으며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간에 나와 같은 일이 어찌 있을 수 있으랴. 차라리 일찍 죽느니만 못하구나’라며 슬픔을 가누지 못했습니다.(4월 19일자)
난중일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많습니다. ‘어머니를 떠나 두 번이나 남쪽에서 설을 쇠니 간절한 회한을 이길 수 없다’(1592년 1월 1일), ‘오늘은 어머니 생신이었으나 적을 토벌하는 일 때문에 술 한 잔을 올리지 못하였다. 그것이 평생의 한이다.’(1593년 5월 4일자), 돌아가신 후에도 그는 ‘달빛이 밝아 어머니를 그리는 슬픔으로 울다 울다 밤이 깊도록 잠이 들지 못했다.’(1597년 7월 9일자)’.

이순신에게 또 한 번의 큰 시련이 닥칩니다. 명량대첩 이후 고향 아산에서 막내아들 면이 일본군의 칼에 찔려 전사한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난중일기 정유년 10월 14일자에는 ‘저녁에 편지를 받았는데 ‘통곡’이란 두 글자를 보고 목 놓아 울었다. 간담이 타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나는 이제 어디에 의지하고 살 것인가. 마음은 죽고, 몸만 남아 통곡하고 통곡할 따름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인간다움은 가족보다, 아래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습니다. ‘더위와 가뭄이 심해 농민이 걱정된다. 오늘밤 소나기가 내린 것은 하늘이 백성을 가엽게 여긴 것이 아니겠는가.’(1594년 6월 14일자), ‘정보를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 전라우수영에 즉시 전령을 보내 피난민들을 육지로 대비하도록 신신당부했다.’(1597년 9월 14일자), ‘어제 저녁에 몸종 금을 본영으로 보냈는데 바람이 몹시 거세어 걱정이 된다.’(1596년 7월 27일자) 이처럼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부하는 물론, 힘없는 농민과 피난민, 심지어 몸종까지 염려한 흔적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영화를 더 감동적으로 보는 방법은 ‘스크린의 이순신’과 함께 ‘지면의 이순신’을 함께 보는 것입니다. 난중일기를 통해 영화 한산과 명량을 더 깊이 있게 만나길 바랍니다.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김경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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