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시리즈 3] 방언의 숨겨진 비밀 - "성령님이 방언을 주시는 목적" //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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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On Dec 20, 2020

시청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청해 주신 광고 수익은 선교와 구제, 교회를 돕는데 쓰여집니다. 감사합니다.

섬네일 표지
출처 : 대영교회 컬럼
제목 : “기도하는 손”
링크 : http://www.daeyoung.org/board/bbs/boa...

배경 음악
출처 : Music Copyright ⓒ Christian BGM All Rights Reserved.
제목 :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링크 :    •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 크리스...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몇 년 전 한 분이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방언 기도를 하면 알아 듣지도 못하는데 계속해야 하나요”라고 말입니다.
또 이렇게 이야기하는 어떤 집사님도 계셨습니다.
“방언 기도를 하면 자꾸 딴 생각이 나고 굳이 알아 듣지도 못하는 데 방언으로 계속 기도해야 하나요? 차라리 이럴 바에는 우리말로 기도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요?”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방언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방언으로 열심히 기도하지만, 나중에는 더 이상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럼 왜 우리는 방언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성령님이 왜 우리에게 방언을 주시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기에, 중도에 방언을 포기하기도 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방언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방언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많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성령님은 어떤 목적으로 우리에게 방언을 주시는 걸까요?
성령님이 이 방언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오늘은 방언 시리즈 세 번째로, 성령님이 우리에게 방언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여러분, 사도 바울이 방언에 대해 뭐라고 말합니까?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지만,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합니다.
그럼 사도 바울이 말한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우리는 헬라어 원어를 통해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에서 “덕”은 “오이코도메오”로 “집을 짓다. 건물을 세우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말은 방언을 통해 자기의 “신앙의 집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방언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신앙의 집인 믿음이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속적으로 기도할 때 어떻게 되느냐?
“영적인 권세”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한 자매에 대해 치유사역을 부탁했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자매였는데 날을 잡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자매에 대한 병원에서의 진단은 “정신분열증”이었습니다.
저는 문진을 통해 영적 분별을 다시 했습니다. 정신병과 영적 문제에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문진을 해보니, 자매의 문제는 악한 영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자매는 이미 자기 안에 다른 존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매의 단계는 악한 영이 숨어 있는 단계가 아니라, 억압을 당하는 단계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군대 귀신들린 자가 억압을 당하듯, 자매도 억압을 당하는 상태였습니다(막 5:5-9) 단지 억압의 정도가 약한 수준의 단계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사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퇴원 후 치유사역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매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어떤 존재가 제 손을 타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강하게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나를 엄습하던 기운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일일까요?
바로 영의 전이가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자매님 안에 있던 악한 영이 제 안에 들어오려고 한 것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성령님이 방언을 통해 그 악한 영을 막은 것입니다.
여러분, 방언에 어떤 기능이 있느냐? 내 신앙의 집을 견고하게 하는 기능도 있지만, 방언에는 또한 영적 권세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성령님이 주신 것이므로 영적 권세와 기름부음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방언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할 때 어떻게 되느냐?
이 영적 권세로 인해 우리에게 보호의 갑주가 입혀지면서 견고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우리에게 방언을 주시는 첫 번째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신앙의 집을 견고히 세우고, 방언 기도를 통해 영적인 보호의 갑주를 입도록 하기 위해 방언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성령님이 우리에게 방언을 주시는 또 다른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다시 고린도전서 14장을 통해 방언의 또 다른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여러분,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구요.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성령님이 방언을 주신 두 번째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여러분, 우리가 방언으로 지속적으로 계속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방언이 성장하게 됩니다. 어떻게요?
처음에는 랄랄라 방언으로 시작하지만, 이것이 언어 방언으로, 능력 방언으로, 새노래 방언으로, 그리고 방언 통변과 예언의 단계로까지 성장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교회와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처음에 방언을 할 때는 자기의 덕을 세우기 위해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방언이 성장하여 방언 통변과 예언의 단계에 이르면 이때부터는 사람들과 교회에 덕을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과 교회의 신앙의 집(덕)을 견고히 세우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령님이 우리에게 방언을 주시는 두 번째 목적입니다.
방언을 통해 자신의 덕을 세우는 사람이 될 뿐 아니라, 성장하여 다른 사람과 교회에 덕을 세우도록 하기 위해 방언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성령님이 우리에게 방언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방언의 또 다른 목적은 무엇일까요?
앞에서 저는 한 집사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방언을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차라리 이럴 바에는 우리말로 기도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구요.
여러분,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육성의 우리말 기도와 방언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된다면 왜 성령님이 우리에게 방언을 주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말 기도와 방언에는 어떤 큰 차이점이 있느냐?
여러분 우리말 기도의 특징은 단방향성 기도라는 것입니다. 즉, 혼이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언 기도는 어떨까요? 방언 기도의 가장 큰 특징은 단방향이 아니라, 쌍방향 기도라는 것입니다. 즉 내 영이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또한 하나님이 방언으로 내 영의 기도를 이끄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얼마 전 기도의 부담감이 강하게 왔습니다. 그래서 기도처에 가서 강력하게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으로 기도했기에 무슨 기도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기도하면서 ‘아, 내가 어느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내가 전혀 관심이 없는 나라였고, 그 나라 상황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내가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감동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 후에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몇 일후에 뉴스를 통해 그 나라에 큰 사건이 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왜 기도의 부담감을 주셨는지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에게 이런 기도의 부담감을 주었을까요? 내 혼에 주셨을까요? 아니면 영에게 주셨을까요?
바로 영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혼이 아니라 영으로 하여금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도록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바로 방언 기도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단방향성 기도가 아니라, 쌍방향성 기도라는 것입니다. 내 영이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도 방언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내 영을 통해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방언으로 이루어지므로 우리가 이것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것을 “비밀”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내 영과 하나님이 방언으로 서로 교통하니 우리가 이것을 전혀 알 수 없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완전히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른 것은 아닙니다.
그럼 하나님과 내 영 사이에 방언으로 이루어지는 비밀의 내용이 무엇이냐?
여러분, 우리는 사도행전 마가다락방에서 성령님이 강림하실 때, 방언이 임한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마가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언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알아 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온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과 같은 사람들이 그 방언을 알아 들었습니다(행 2:9-10). 그러면서 이들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 말함을 듣는도다”라고 하지 않습니까?(행 2:11)
여러분, 하나님과 내 영 사이에서 방언으로 나누어지는 비밀의 주요한 내용이 무엇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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